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현재의 건물은 루브르 궁전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센강 주변을 포함하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인 루브르 피라미드는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규모는 2019년 기준으로 총 615,797점에 달한다. 이들 중 8개 전시관에 공개되는 작품 수는 35,000점에 달한다. 2021년 3월 24일부터는 온라인 소장품 검색 서비스가 시작되어, 전체 61만 점 중 482,943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조각관은 1850년 이전의 작품 중에서 에트루리아·그리스·로마관에 속하지 않는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조각품 전시는 왕궁으로 사용되던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나, 1824년까지만 하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와 《반항하는 노예》를 제외하면 모든 소장품의 연대가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만 머물러 있었다. 초창기에는 소장품의 규모가 100여점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왕실 소장품은 베르사유궁에 전시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공예품의 연대는 중세부터 19세기까지이다. 루브르 박물관 공예관은 본래 조각관의 소장품으로 출발하였으며, 왕실 유물을 기반으로 역대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열렸던 생드니 대성당의 작품들을 인수하여 오는 것으로 꾸려졌다. 소장품이 처음 꾸려질 당시의 대표작은 피에트르 뒤르 기법의 꽃병과 청동 공예품이었다. 1825년 뒤랑 컬렉션의 기증으로 도자공예품, 에나멜 장식품,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추가되었으며, 피에르 레부아유가 800여점의 공예품을 추가 기증하면서 그 규모가 늘어났다. 또 낭만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르네상스와 중세의 공예품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소바조 컬렉션의 기증으로 중세시대 공예품과 파이앙스 도자기 약 1,500여점이 더해졌다. 1862년에는 캄파나 컬렉션이 추가되어 15~16세기를 중심 연대로 한 금공예품과 마욜리카 도자기를 대거 소장하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회화 소장품은 총 7,500여점으로 연대 범위는 13세기에서 1848년까지이며, 12명의 큐레이터가 소장품 전시를 관리하고 있다. 전체 소장품 중 3분의 2는 프랑스 화가의 작품이며, 북유럽 화가의 작품 수가 1,200점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회화의 경우 대부분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프랑수아 1세와 루이 14세의 수집품들이며, 그 외 나머지 작품은 나폴레옹 집권기에 전리품으로 들였다가 반환되지 못한 작품, 또는 박물관이 자체 입수한 작품이다.
 이슬람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전시관으로 "3개 대륙에 1300년"을 아우르는 소장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자기, 유리, 철제, 목제, 상아, 카펫, 직물, 모형 등 총 5,000여점의 작품과 1,000점의 파편을 전시하고 있다. 본래는 공예미술관의 한 일부였으나 2003년 별개의 전시관으로 독립하였다. 대표 전시품으로는 10세기 안달루시아의 상아상자인 《알무기라의 픽시스》, 13~14세기 맘루크 왕조의 놋쇠 장식 양동이인 《생루이의 세례물통》, 10세기 이란에서 제작된 《생조스의 수의》가 있다. 이 밖에도 페르시아의 피르다우시가 지은 서사시인 《샤나메》의 세 쪽 분량을 소장하고 있으며, 시리아의 철기인 《바르베리니 화병》도 소장품 중 하나다. 2019년 9월 사우디의 라미아 빈트 마즈드 알 사우드 왕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슬람 미술관의 개편 공개식이 열렸다. 개편을 통해 스페인에서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인도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문화권에서 수집된 7세기~19세기 유물 3,000점이 전시되기 시작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였다. 아직도 당시의 요새 잔재들을 볼 수 있다. 이 요새가 루브르 궁이 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친 건물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168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는 첫 번째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아카데미는 루브르에 100년 동안 남아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가져온 수집품들이었다. 박물관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박물관이 1796년에서 1801년까지 문을 닫았다.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장품의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다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하자 나폴레옹 군대에 빼앗겨 루브르로 보내졌던 많은 작품들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졌다. (사실 당시 박물관장이 지하실에 빼돌려 돌아가지 못한 작품도 여러 개 있다고 한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 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제국(나폴레옹 3세 통치 기간) 중에 20,000여 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제3공화국 때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는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 이집트 고대 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그리고 판화와 소묘관 등이다.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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